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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스톤헨지 (Stonehenge), 영국

by 이다인 2023.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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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 (Stonehenge), 영국

 
이천여 년의 세월이 이루어낸 런던은 세계 금융 문화 정치의 중심 공간으로 여전히 당당하게 건재하고 있다. 거기다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의 국가를 합쳐 The United Kingdom이라 하지만 좀 관심 있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종족, 출신, 법, 기후 등 역사적 배경이 다양하고 매력이 넘쳐 많은 사람들이 늘 관심을 가지는 도시다. 특히 프랑스인들에게는 도버 해협만 거치면 옛 켄트왕국의 수도이었고 잉글랜드 최초의 기독교 도시로 성 어거스틴 수도원대성당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 (1986년)되어있는 고도 캔터베리가 있어 대륙의 많은 사람들의 방문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오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작은 도시이나 영국 성공회의 최고 성직자이자 세계성공회 공동체의 상징적인 유서 깊은 도시다.

이미 영국 많은 곳을 방문하고 돌아보았지만 꼭 한번 가야지하고 미루던 곳이 내게는 스톤헨지 (런던에서 85 km)이었는데 어느 날 여름밤 캔터베리 가까이 사는 친구 으로부터 스톤헨지에 자기 자동차로 함께 가자는 초대를 받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조금 주저했지만 순간적으로 여러 번 보아왔던 그 원형으로 늘어섰던 돌기둥들과 솔즈베리 평원의 다양한 사진들이 내 눈앞에 스치는 순간 나는 두말 필요 없이 당장 가겠다고 답했다. 앤과 함께 그동안 밀린 얘기들과 가족들의 근황을 서로 나누면서 주거니 받거니 옛 친구들 얘기까지 해가면서 한참 수다를 떨었더니 벌써 예약된 작은 호텔 앞에 차가 도착하였다. 정확한 시간을 보지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캔터베리와도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미 책이나 사진들을 통해서 그곳 분위기나 풍경은 거의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땅에 발을 디디고 현지인들을 접하고 식당에서 그곳 음식을 먹고 마시고 하시고하니  색다른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하는 그런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여름이기는 해도 서서히 어두움이 밀려오는 시간을 그 아무도 밀어낼 수는 없었다. 일단 호텔 주변을 걷고 내일을 위해서 푹 쉬고 깊은 잠을 청하기로 했지만 젊은이도 아닌 우리들이었지만 오천여 년의 역사를 지닌 선사 시대의 유적 거석 기념물이 바로 내 가까이에 있다는 실감이 나의 깊은 잠을 방해하고 있었다.

만리장성, 피라미드, 오벨리스크, 파르테논 신전과 신대륙 발견 이전 미주 대륙에 있었던 가장 큰 도시 (당시 인구 10 만여 명이 거주)이었다는 멕시코의 큰 자랑거리 대유적 테오티우아칸 (Teotihuacan) 폐허의 돌층층계... 등등 수많은 지상과 지하의 귀중한 돌유물 그리고 고인돌들을 돌아보고 관찰하기를 즐겨 다녔던 기억들이 새롭다.  스톤헨지의 건립시기와  보존상태등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으나  세계적인 고고학자들과 특히 영국 5개 대학 연구팀들이 연합하여

7년간 탐사한 끝에 당시 지역을 다스리던 유력가문의 무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 돌무덤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였고 또 더 배우고 느끼고 싶었었는데  이번에 아주 좋은 기회를 가지게 해 준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을 열어보니 그날 날씨에 대해서는 일단 안심이 되었다.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영국을 갈 때마다 비가 내려 우산을 쓰고 다녔던 기억과, 늘 짙은 구름이 끼어 우울했던 경험이 있어 그 나라의 날씨는 믿을 수가 없었다. 스톤헨지에 갈 때는 하지 때 태양이 중천에 떠서 그 평원 위에 원형으로 배치된 거석 중앙 제단을 비추는 시간에 가는 것이 좋다고들 권유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하지는 며칠 지나갔지만 시간이라도 맞출 생각으로 곧바로 입장하지 않고 그 주변을 무턱대고 우리는 산책하기로 했다. 이른 오전이라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깨끗한 인도가 있을 뿐 사방이 전부 녹색 공간으로 아마도 보리 밀 채소 등이 심어져 있는 듯했고, 새들이 몇 마리 날아가고 멀리 양 떼들이 지나가곤 했다.
 
항상 일, 건물, 사람과 사람 속에서만 살아왔던 전형적인 대도시 시민이었던 우리는 정말 딴 세상에 들어온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날 아침에 시간을 보냈던 그 열린 녹색공간에서  우리는 평화, 사랑, 예술과 같은 경지를 온몸으로 느끼는 듯했다. 친구 앤과 나는 말없이 오랫동안 걷고 있었다. 어디를 가고 있는지 어디쯤 왔는지도 몰랐다. 이리저리 걷다 보니 의자가 보이는 것 같아 다리가 아파 잠시 쉬었다.

 

멀리 외진 들판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거석들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 8미터 무게 25-30 톤이 나간다는 총 80 개의 돌을 30 km와 200km 떨어진 곳에서 몇천 년 전에 실어왔다고 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 어려운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톤헨지에 대한 건축 양식과 동기에 대해서도 시대마다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할 뿐이다. 거대한 돌기둥은 2종류의 돌로 세워졌고 하나는 잉글랜드 중남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라센 (Sarasen) 석이며 또 하나는 웨일스 지방 화산암 블루스톤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관광객들이 가까이 가서 돌을 손으로 직접 만져 보기도 하고 입맞춤도 하는 어처구니없는 짓까지 했으나 지금은 이 선사시대의 귀중한 세계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규정도 엄격해져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 선밖에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감상하도록 되어 있었다. 돌문화, 돌예술이란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지 일찍이 존재했지만 가장 공통적인 이유는 그 물성 자체가 가지는 초자연적인 힘이 내재할 것이라는 원초적인 믿음이 인간에게 깊게 깔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천천히 때로는 촉각을 세워가며 여러 번 돌면서 돌 테마를 두고 각자 무언가를 곰곰이 상상하였다. 
 
비록 하지는 지났지만 해가 정 중앙 가까이 온다는 정오를 기다리며 그때부터 앤과 나는 한쪽에 물러서서 하늘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가족 단위 혹은 전세 버스로 외국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밀려왔다. 오전 산책 중 초록평원의 적막감과는 달리 하늘은 짙은 청색으로  때로는 강열한 빛을 품어대면서 이따금 빠른 속도로 요동하는 흰 구름까지도 동반하는 아주 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톤헨지에서 보고 느꼈던 평원, 하늘과 돌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나의 회화 작업에 큰 도움과 변화를 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후에 나는 우연히 한국 고인돌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내가 놀란 것은 세계 약 6 만기의 고인돌중에 거의 절반인 3 만기 정도가 우리나라에 있으며 특히 전라남도에 거의 2 만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더욱이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은 경남 김해시 구산동에 있으며 그 무게가 350 톤 (스톤헨지의 돌은 5-50 톤)이라고 하니 우리 선조님들은 어떻게 그런 기적 같은 일을 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거기다가 암각화도 새겨 넣은 것들도 있다고 하니 정말 우리 선조님들은 대단하신 분들이었음이 확실하다고 믿어진다. 꼭 알아두었어야 할 우리의 자랑스럽고 중요한 역사를 잊어버리고 혹은 모르고 사는 지식인들이 나뿐만은 아니겠지만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가까이 있는 전라도 고인돌도 한번 보러 가보지 않았던 자가 스톤헨지의 것을 보러 영국까지 갔다 온 것에 내심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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