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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세이

여름 물 음악

by 이다인 2023.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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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물 음악

 

사계 어느 계절이든 그 맛과 멋이 있다. 또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그 선호의 순위가 다를 수 있다. 누가 나에게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여름이라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나는 어릴 적 유치원에 들어가서 오랜 기간 동안 학교와 인연을 이어 왔었기 때문에 방학이란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나의 과거 많은 즐거운 일들이, 행복했던 시간들이 방학동안에 있었고 그것도 여름방학에 더 많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어나거나 또는 조용한 시간에 문득문득 방학 때 즐거운 일들이 생각나서 혼자 미소를 지을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양학계 (西洋學界)와 달라서 여름, 겨울 방학 두 개가 거의 똑같은 기간으로 길다. 교육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방학 기간 이외는 거의 생활 리듬이 고르고 큰 변동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나의 경우에는 겨울 방학은 대개 지적, 학문적인 충전을 하는 것으로 쓰인다. 공간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더라도 한 장소를 정해서 오래 머물게 된다. 그 기간에는 사람을 다양하게 만난다든가, 내 속을 퍼내는 일을 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남의 글을 유난히 많이 읽는다든가, 음악을 많이 듣는다든가, 영화 연극을 구경한다든가, 그림이나 글쓸 것을 구상하는 등으로 시간을 짠다. 이런 것들은 바로 결빙되는 겨울이 가지는 견고성, 부동성, 한랭성, 불모성들이 인간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예외 없이 나도 겨울은 칩거 상태에서 다가올 풍성한 계절을 준비하는 자세로 지낸다.


무거운 겨울을 밀어 제치고 노란 잎새들이 얼굴을 내미는 봄이 오면 나는 재생의 환희를 맛보며 푸르고 풍성해질 여름을 꿈꾸며 가슴 설레는 계절을 맞는다. 견디기 힘든 혹서나 장마의 지루함이 있어도 나는 여름을 기다린다. 여름휴가를 손꼽아 기다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여름은 모든 풍요로움의 절정이다. 특히 물을 좋아하는 나는 바다, 강, 계곡에 이르기까지 흐르는 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수영을 잘할 줄 모르지만 물속에 들어가 있기를 무척 좋아한다. 물속을 들여다보고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아무리 바쁘고 복잡한 일이 있어도 누가 물에 가자고 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성큼 따라나선다.


모든 사물이 거의 양면성을 가지듯이 깊은 물, 고인 물, 난폭한 물과 같은 죽음을 부르는 물이 있지만, 반대로 물의 긍정적인 모든 요소는 인간에게 생명의 물이 되고 있음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름에는 바다 수영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어 더욱 기다려진다. 나의 물에 대한 찬양은 단순한 물과의 만남만이 아니다. 나는 수영을 하는 동안 물은 신이 창조한 '자연의 젖' 임을 절감한다. 물속에 풍덩 들어가는 순간 싸늘하게 느껴지는 체감도 전혀 나쁘지 않으며, 금방 이상한 쾌감으로 바뀐다. 두 손을 쭉 뻗고 발차기를 하며 물을 가르며 쑥쑥 빠져나가는 나는 스스로 고기임을 착각한다.


내 살갗을 스쳐가는 물결의 동요는 기이한 부드러움으로 번지며 물속에서 나는 현실과 완전히 격리되는 아련한 행복으로 인도되는 경험을 갖게 된다. 나는 일상의 여러 잡다한 문제들이나 현실의 무게들이 나를 짓누를 때는 부드럽게 보호하는 듯한 물의 율동에 나를 맡겨 버린다. 그러면 서서히 나의 무의식적 추억의 무엇인가가 평화롭게  '모성적 물' 과의 만남을 이루어 준다. 그러면 순백무구한 한 아이처럼 평정의 느낌을 받게 된다.

 

여름 물 음악 바다
여름 물 음악

 


밤에도 물이 따뜻했던 에게해에서 어느 날 나는 밤 수영을 즐긴 적이 있다. 달빛이 내려져 우윳빛으로 변한 바다에서 헤엄을 쳐본 경험이 있는 자는 밤의 비밀을, 자연의 신비스러운 언어를 들어보았을 것이고  '바다는 모성이며, 물은 놀라운 젖' 이 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밤이 무르익어 가는 바다에서 같은 리듬으로 헤엄치고 있으면 어느덧 우유빛깔의 물은 다양한 악기로 변하여 열리는 음악세계에 내가 몰입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내 동작과 내 동성 여하에 따라서 음악의 곡목은 수시로 바뀐다. 그러면 나는 몽상하는 듯한 감미로운 시간을 즐기며 부드러움과 따스함과 휴식을 강하게 느낀다.


밤시간에 음악이 듣고 싶어 틀어놓고 있으면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안면방해가 되지않을까 싶어 조마조마해 하며 볼륨을 올렸다 내렸다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미스차 마이스키여, 신기의 첼로를 이 밤을  위해 켜줘요, 크리스천 짐머만, 당신도 모차르트 소나타를 두들겨요. 다음은 안 쏘피 무터 멜델손의 바이올린 콘체르트를 켜 주어요."  이렇게 지상의 명연주가들을 불러 모으면서 헤엄치고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수영은 언제나 나에게 자유의 의미가 있다. 화려한 의상이나 보석이 필요 없다. 수영복 하나만으로 초대되는 물의 축제다. 나는 행복을 만끽한다. 이렇게 자유로움을 포식하고 나는 '식량으로서의 물' 을 느끼며 배불러한다.


이렇게 많은 것을 채워주는 물을 더 쉽게 만나기 위해서 헤엄치기를 좀 더 열심히 하고 싶다. 고기들의 동작들을 보고 있으면 신기해질 때가 많다. 물속에서 내 몸놀림이 고기처럼 유연해지고 싶으나 호흡 조절 잘못으로 자주 낭패감을 느낀다. 나는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을 대단히 부러워한다. 그런 사람들이 물속에서 하는 동작을 보면서 나는 '자유와 유연성' 을 배운다.살면서 나는 순리가 통하지 않을 때가 제일 속상하고 안타까웠던 적이 있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때를 쓰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과 마주하게 되면 숨통이 막힐 것 같고 증오심마저 생기고 경멸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것도 성인이, 또 교육을 받은 사람이 그럴 때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 사람들 모두 모아서 물속에 집어넣고 싶다.물속에서는 자기의 동작이 무리 없이 부드러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터득할 것 같고, 그것이 터득되면 정신마저도 함께 부드러워질 것 같기 때문이다. 투박하고 미련한 정신의 소유자에게는 수영을 권하고 싶다. 모가 나고 닦이지 않고 때가 끼인 구석구석이 세련되어질 것이라고 믿고 싶다.


여름 태양만이 우리를 물가로 인도한다. 어느 여름 방학 여행길 차창 풍경 중에 작은 시골 강가에서 멱감는 소녀들과 물장구를 치며 살갗을 새까맣게 태운 소년들의 웃음소리와 더불어 지치고 때 묻은 내 영혼이 갑자기 치유됨을 느낀 적이 있는가 하면, 여름 강열한 태양 아래 물과 놀고 있는 아이들의 존재는 유연성과 순수성의 영웅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또 어느 날 나는 여름 문화행사가 줄지어 있는 남불(南佛) 어느 작은 도시를 거닐다가 젊은 여인의 부푼 가슴처럼 품어대는 분수 앞에 서성거려 보면서 솟아오르는 뿌연 물보라 건너편에 어른거리며 보이는 선남선녀들의 드러낸 하얀 이빨과 웃는 표정에서 살아 있는 천사를 느낀 적도 있다.


이렇게 여름의 물이 가지는 그 모든 것은 나를 인간 본연의 선량함, 유연함, 순수함으로 돌려주었다. 나는 여름방학 덕분에 때 묻고 찌들어짐에서 소생된다. 여름 방학은 나에게 행복한 추억의 보고로 존재한다.  어느 여름날, 내가 지중해에 오래 머물고 있을 때 한 반가운 친구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는 어린이 같은 맑은 인격의 소유자며, 사고가 경직되지 않아 자유롭고 바다처럼 넓고 깊으며 물결처럼 유연함이 있어 나는 그를 좋아했다. 우리는 바다를 마음껏 소유했고, 허물없이 어린애들의 천국을 즐겼다. 그리고 야외 음악회에 가서 천재들의 음률에 도취하여 마음과 마음을 말끔히 씻었던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여름→물→음악 이 모두는 내 삶의 산문적 요소에서 시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다가선다. 수영과 음악 같은 것은 나의 육체와 영혼을 순화시키는 경건한 의식이 되고 있다. 일상을 한순간도 완전히 도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일상과 도피가 공존되면서 인간 본연의 순수함을 지향할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시간을 스스로 만드는 힘을 가지는 것이 인간에게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여름의 물과 음악의 친화력을 구축하는 일이 즐겁다. 진정한 가치가 우리의 삶, 여기저기서 상실될 때 나는 물을 찾는다, 음악을 듣는다. 오늘은 유난히 릴케의 시구를 흥얼거리고 싶은 밤이다.

 

주여 제 철입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마지막 열매들이
탐지게 살이 찌도록 마련해 주옵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南國的인 날을 베풀어 주소서.


 

물-사진
. 여름 물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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