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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세이

삶의 질

by 이다인 2023.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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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

 
삶의 질이란 다분히 철학적인 명제이다. 그러므로 정치, 사회, 경제, 예술 등 모든 전문 분야와의 공동 작업으로 다루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우선 질이란 양의 대칭 개념이면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다. '삶의 질'이란 문제는 인간 역사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생겼다고 믿는다. 인간 이외의 다른 어떤 동식물이 질을 갈망하고 운운한 적이 있었던가? 질을 따지고 갈망하는 것은 인간들만이 하는 일이다.
 
무엇이, 어디까지가 질적이고 또 질적이 아니라는 기준치도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우나 때로는 주관적으로, 때로는 상대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발에 채는 돌이나 다른 모든 사물, 또는 형이상학적 대상에 이르기까지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별되는데, 인간의 삶이 질적인 것과 비질적인 것으로 분명히 분류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삶의 질적 추구는 인간만의 속성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질이 좋은 삶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명제 앞에 서게 된다. 우리나라도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급진적인 경제 성장에 수반되는 물질문명과 정신문화에 대한 불균형감을 누구나 피부로 느끼게 되었으며, 물질문명의 횡포와 질에 대한 양의 위협 같은 것을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런 사회 빙폐에 대한 특효약은 문명, 정신문화 지향성으로 처방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문화라는 말만큼 보편화되고 많이 쓰이는 말도 드물다. 문화적인 것을 왜 모두가 선망하는가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의 행복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류 사회, 선진국, 양반, 귀족, 좋은 가정, 이런 어휘들은 바로 격이 높은 문화 수준의 척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돈이면 다 되는 것 같은 현대의 풍요로운 물질 사회에서 살다 보면 물질의 위력이나 필요성을 알게 모르게 인정하게 된다.
 
물질이 인간의 많은 불행과 불편함을 막아 주며 행복을 보강시킬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인간의 행복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누구나 열망하는 행복의 요인이 될 수 있는 문화 가치가 인간의 정신적 소득과 더불어 존재하는 한 '삶의 질’은 그 사회, 또는 한 개인의 ‘문화적 수준’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즉 극단적으로 말하면 수준 높은 문화성은 바로 ‘삶의 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진 자와 학벌이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문화 수준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화성이란 수면 시간을 제외한 모든 깨어 있는 상태의 정신 활동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 개인이 또는 한 사회가 무엇을, 왜, 어디서, 언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한 사물이나 한 사건의 결과는 전혀 다를 수가 있다. 때문에 제대로, 올바르게, 가치 있게 사고하고 사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열쇠이자 질적 향상의 지름길이다.

 


우리는 미국을 물질적으로 잘살고 국제 사회에서 힘 있는 나라라고 하는 반면, 소련의 군사력이 막강하다고 하지만 프랑스나 스위스 같은 유럽제국에 비해 문화의 질이 높은 나라라고는 하지 않으며,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부자 나라를 문명 또는 문화국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국민학교만 나온 부인이 교양이 있을 수 있고,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 교양이 없을 수도 있으며, 당대의 권리가로서 나는 새도 무서워한다는 어느 고관대작도 야만스러울 수 있다. 또 어느 부호가 악명 높은 도적보다 더 흉측한 수 있으며 대학 교수, 법관, 목사가, 한 보잘것없는 촌부보다 부도덕하고 정직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한 가정이나 사회의 높은 문화 수준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의 진수가 깊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흔히 프랑스 사람들을 가리켜 유럽에서는 "Les Francais, ils savent vivre (프랑스 사람들은 살 줄 안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바로 삶의 질을 누릴 줄 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인생의 질 문제에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프랑스 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한 번쯤 살펴보는 것도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들이라고 우리 눈에 비치는 단점이 없을 리 없지만,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를 들어 보자. 우선 국시로 내걸고 있는 자유, 평등, 우애가 그런대로 잘 지켜지고 있는 민도 위에서 사소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비평 정신이 배어 든 그들의 합리성, 개성, 예술성의 구현은 놀랄 만한 가치로 평가된다. 한 사물을 볼 때도 눈으로만, 수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볼 줄 아는 여유와 섬세함이 있고, 표현력에 있어서도 언어 매체 이외에 예술가적 감각으로 우아함을 잃지 않으며, 그들의 의·식·주 생활은 세계인들이 입을 모아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한마디로 그들의 노력과 까다로운 심미적 취향의 덕이라고 본다. 마치 이조시대의 엄격한 궁중 규칙이 한국의 의·식·주의 문화를 지켜왔듯이 마음 좋고, 쉽고, 편한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닌 경우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비근한 예로 그들은 돈이 있다고 해서 집집마다 고급 가전제품을 두지는 않는다. 부인들은 보석을 사서 장롱 속에 쌓아 두는 대신 월부로라도 그림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고급 백화점의 대 메이커의 으리으리한 물건에서보다 노천 ‘벼룩시장'의 한 도공의 손길을 더 사랑한다. 전화 사용보다 편지 쓰고 받기를 더 좋아한다.
 
독서를 꾸준히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서 문화를 기대할 수 없다. 휴가를 즐길 줄 알며 놀이를 할 줄 안다. 남녀가 사랑을 할 때도 깊은 물에 빠져 보기 흉한 몸짓으로 허우적거리지 않으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풋내 내지 않고 수영을 즐기듯이 품위 있게 서로를 관리할 줄 아는 총명한 지혜를 터득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정의가 위협당하면 사자로 변신할 줄도 안다. 세계의 핍박받는 많은 망명객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인도적으로 대접한다. 인물이 박색이고 체격이 못생긴 사람 중에도 멋쟁이가 많다. 얼굴과 체격은 하느님의 권한이지만 멋을 부릴 수 있는 재간은 개인의 능력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삶의 공존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반드시 어떤 연령에 결혼하여 남녀가 꼭 같이 살아야 된다고 믿지 않는다. 독신자, 미혼자, 과부, 부부 등 어떤 형태의 삶이라도 서로 존중하고 공존할 줄 안다. 또 파리(Paris)가 가장 사랑받는 도시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파리는 각 인종, 예술, 풍습, 요리 등 만국의 요소가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다.
 
삶의 질이 향상되려면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선택 이전에 개방의식 속의 공존이 가능해야만 모든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터전이 이루어진다. 삶의 질이란 시시각각으로 만나는 시간과 공간에서 개개인이 진· 선· 미를 목표로 엄격하고 까다로운 자세로 임하여 선택 관리함으로써 생겨날 수 있는 삶이다.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면 산문적이 아닌 시적인 경지이다.
 
끝으로 부언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데 남녀를 운운할 수 없지만 한 가정의, 한 사회의 문화 수준을 높이는 데에는 여성들이 견인차 역할을 한 역사적인 실례들이 많다는 것이다. 지혜롭고, 문화적인 여성이 많은 가정과 사회,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사회는 일반적으로 삶의 질이 높은 사회이다. 그만큼 여성의 책임도 크며, 그런 여성을 배출할 수 있는 사회는 자신 있는 남성들의 능력과 배려에 기인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평온한 자연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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