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세계 문화 예술 기행
  • 세계 문화 예술 기행
  • 셰계 문화 예술 기행
詩·에세이

by 이다인 2023. 7. 3.
반응형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말의 ‘섬’과 프랑스어의 ‘île’란 말을 대단히 좋아한다. 그것을 종이 위에 써 놓고 보면 더욱 애잔한 정이 간다. 흔히 표의 문자인 한문에서는 글자의 생김새와 그 뜻이 상통하는 경우가 많지만, 표음 문자에서는 사물의 모습과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한글의 ‘섬’과 여성 명사인 프랑스어의 ‘île’은 우연히도 섬을 그대로 표상해 주는 것 같다.

 

거기다가 영어의 ‘island’나, 독어인 ‘Insel'처럼 복수 음절이 아닌 단음절인 것이 더 효과적인 것 같다. 연유는 어쨌든 간에 '섬’과 ‘île’은 사물을 아주 잘 표상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대통령 이름이 ‘억쇠’, 대학 총장 이름이 ‘석두’라고 했을 때 그 이름과 직업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불일치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섬'과 'île'은 제격이다.

나는 지리적인 의미의 섬을 늘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섬이 지니는 이미지·은유·상징·모든 형이상학적 의미까지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크고 작은 섬, 유명하거나 아니면 풀꽃처럼 전혀 이름이 없는 섬이거나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섬이란 육지와 떨어져 있어 세상 돌아가는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섬의 크기와 대륙과 떨어진 거리에 따라서는 각기 독특한 개성,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어서 찾아가는 나그네가 받는 정취와 인상이 놀랄 만큼 서로 다르다.

 

이미 하나의 국가적 단위로 승격된 섬은 섬의 성격을 잃어버려 나에게는 그 매력을 상실해 버린다. 영국이나 일본이 그 경우이다. 혼자 버티기에 힘에 겨워 보여 누군가가 돌봐주어야 하고 소박하고 착한 마음씨가 늘 깔려 있어 청초한 아름다움까지 느끼게 하는 한 여인 같은 땅이 아니다. 기름기가 번들번들하고 튼튼하여 없는 것 없이 다 갖춘 문명사회의 한 힘센 남성을 느끼게 하는 영국과 일본은 이미 섬이 아니라 대륙이다.

 

반대로 내가 아는 실론(Ceylon/ 현재의 스리랑카) 같은 섬은 국가면서도 많은 물질적 결핍과 허약성 때문에 섬을 느끼게 한다. 거의 적도상에 있는 이 섬에 들렀을 때는 다행히 그 열기를 상대해 줄 만한 나의 젊음이 아직 있었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실론은 야생녀로 육화 된 강렬한 섬으로 와닿았다.

 

새벽에 그곳에 도착한 나는 바다 수면에 둥근 얼굴을 내밀고 있는 해를 보았다. 이글거리던 그런 해를 그전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장렬함 앞에 인간인 나는 풀벌레보다 작은 존재로서의 왜소함을 느껴야 했다. 낙조(落照)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당당하게 지는 해를 그곳에 가기 전에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강한 태양의 들러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실론은 가냘픈 여성적 섬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때의 실론의 풍경은 정리되지 않았고, 고급 식당에 들어가도 그 독특한 열대 도시 냄새가 따라다녀 밥을 먹을 수가 없는, 세상의 온갖 후진 면을 다 지니고 신음하는 듯한 동정이 가는 섬이었다. 그래도 실론은 긍정적은 아니었어도 섬이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나는 어느 날이고 기회가 닿으면 남해나 그리스 어느 섬에 가서 좀 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직도 열을 올릴 수 있는 '어른을 느낄 수 있는 사람'과 더불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라고 꿈꾸어 본다. 내가 신부나 승려, 학자, 예술가... 등 이런 신분의 사람들에게 '섬’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나라는 인간 속에도 대륙과 섬의 두 요소가 도사리고 공존해 있음을 나는 안다. 나의 천진스러운 작은 행복감, 진지한 근로정신, 불의에 승복하지 않는 의지, 학문과 시와 그림을 상실하고 싶지 않은 끈끈한 애정, 순수한 사람 앞에서 양보다 더 순해져 버리는 성품… 이런 것들은 내 속의 섬적인 요소라고 생각해 본다.

 

이런 것들은 파도와 싸우는 섬처럼 외로움의 순례를 통해서만 생겨나는 산물이기에 나는 아끼고 사랑한다.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편리한 대륙, 분노·경쟁·시기·일등의식이 붕붕 떠서 열을 뿜고 있는 대륙성이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으면 나는 불편하고 괴롭다. 그리고 한없이 우울하고 슬퍼진다.

 

나는 섬이고 싶다. 많은 것이 필요 없는 섬으로 살고파 최근에는 매일 인근에 있는 산에 오르면서 하루의 일과를 생각해 보는 아침을 맞는다. 섬은 나에게 꿈이다. 상습적인 대륙이 역겨워지고 의례적인 사람들과의 관계에 거부감이 생기면 나는 더욱 섬이 그립다. 우무에 젖은 새벽 바다 위에 질소(質素)하게 떠 있는 섬이 좋다. 시작과 끝이 없는 파도의 걸음만이 있는 섬은 나의 꿈이다. 그리움이다.

 


반응형

'詩·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의 질  (0) 2023.07.25
초원  (0) 2023.07.08
저녁  (0) 2023.06.26
까뮈 묘지에서  (0) 2023.06.15
엑스의 이른봄  (0) 2023.06.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