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세계 문화 예술 기행
  • 세계 문화 예술 기행
  • 셰계 문화 예술 기행
詩·에세이

그해 여름

by 이다인 2024. 8. 17.
반응형


그해 여름


그해 여름 나는 프랑스에서 큰 수술을 받고 한더위 속의 7월 한 달을 그곳의 시골 요양원에서 보낸 적이 있다. 6월 초에 수술을 받고 3주일 동안이나 입원을 했기 때문에 거의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도 수술담당 의사는 퇴원증을 떼 주지 않았다. 그 대신 요양원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서를 써 주었다. 그래서 나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난생 처음 요양원이란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비용은 대학 보험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 요양원은 정원이 넓고 숲에 둘러싸여 있으며 원두막 같은 휴식장소도 있는 환경이 좋은 곳이었지만, 한 달간을 허약자나 비정상인들과 지내려니 다소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1백 개의 침대와 거의 완벽한 부대시설, 그리고 의료진들이 있었다. 병원과 다른 점의 하나는 모든 사람들이 꼭 아래층 식당까지 내려가서 식사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즉 방까지 식사를 날라다 줄 만큼 허약한 환자는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루 세 끼는 꼭 여러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는데 그 풍경들이 볼만하였다. 그곳에는 전혀 다른 두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다. 수술 후 회복기에 든 깡마른 사람들 아니면 1백 킬로그램 전후 나가는 뚱보 아주머니들이었다. 그 뚱보 아주머니들을 보고 처음에는 저렇게 건강한 사람들이 도대체 여기는 왜 왔을까 하고 의아해했으나 지내면서 차츰 그들의 고민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도 내 앞뒤 방 환자 모두 '비만과'에 속하는 부인들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사람은 무엇엔가 열중하면 외부의 기류나 환경을 쉽사리 잊어버릴 수 있다고 하더니, 그들의 하루하루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3,40도를 오르내리는 남프랑스의 더위를 잊게 해 주었다.

우선 그들의 식사 내용을 보면 아침은 설탕 안 탄 커피나 차 한 잔, 점심 저녁도 아주 간단한 것으로 끝내며 물 한 모금도 계산해서 먹는다. 또 주 2회 식이 요법 강의를 받는다. 아침마다 의료실에 가서 몸무게를 달고 그것을 기록한 다음, 땀 빼기 운동실에 간다. 그리고 넓은 이층 베란다에 가서 일광욕을 2시간쯤 하고 내려오는데 바로 이 장면이 볼만하다.

거구의 부인들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서로 등에 기름을 발라 주며, 또 너무 더운 날에는 서로 찬물을 끼얹어 주면서 번듯이 누워 있는 장면은 무슨 바다의 대어(大魚)들이 포식 후 쉬고 있는 장면 같다. 체중 줄이기 작전에 나선 이들은 약 한 달간 이런 생활을 계속하면 5~1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곳에 들어오려면 물론 의사의 진단서가 있어야 했다. '그 더위에 그 몸집에 그 열성'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그해 큰 몸짓 탓에 유난히도 더 더워 보였던 이  '더운 여인'들과 더운 여름을 지낸 셈이었다.

7,8월의 공격적인 더위가 찾아오면 나는 가끔 그 극성스러운 부인들을 생각하곤 한다. 지금쯤은 날씬해져서 남편이나 애인들과 아름다운 지중해 해변을 거닐고 있겠지. 또 '더운 여인'들 틈에서 얼어붙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겨울처럼 목을 길게 드리우던 ' 허약파'의 깡마른 여인들은 지금쯤은 나처럼 새로운 삶을 누리고 있겠지. 더운 사람, 차가운 사람, 더위, 추위 등과 같은 이중성은 우리 삶의 원초적 두 성향이어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것이고, 또 좋을 수도 나를 수도 있는 법이다.

 

더위 속에서 더위를 타지 않고 지내는 법은 이제 다양해졌다. 과학 문명을 이용하여 자기의 공간을 봄이나 겨울로 만드는 소위 에어컨을 이용하는 법, 바다와 산을 찾아가는 법, 극기심으로 심한 육체와 정신 노동을 하는 법 등 정말 여러 가지다. 가장 자연스럽고 무난한 것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더위에 함락당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생활의 활력소가 생겨난다고 믿는다.

 

내 경우는 경제적 여건만 허락되면 길을 떠났다. 여름이 다가오면 축제에 나서는 것처럼 마음이 설렌다. 미지의 장소, 미지의 시간 속에 나를 몰입시키고자 길을 떠난다. 특히 유럽에 대한 나의 문화적 지식 중 많은 부분은 길을 가면서 쌓았다. 이 도시 저 도시, 이 산과 저 강,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7,8 월에 대한 나의 기억의 창고에는 이름 지을 수 없는 가지 각색의 보석들로 엮어져 있다. 차라리 더위는 길 떠나는 과객에게는 더없이 좋은 조건 중의 하나가 아닐까.

 


 

 

 

일광욕

 

 

 


 

반응형

'詩·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0) 2024.10.05
거부된 시간  (0) 2024.09.18
어머님의 새벽  (0) 2024.08.03
詩, 너는...  (0) 2024.07.07
囚人 (수인)  (0) 2024.06.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