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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세이

꼬마 신사

by 이 다인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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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신사


피부에 닿고 눈으로 목격되는 한계만이 삶의 전부이고 우리가 서 있는 사회라면 좀 서운해진다. 너무나 각박한 인간과 인간끼리 서로 마주 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숨 막히는 일이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위해서, 각축을 위해서 애쓰는 모습은 비굴하고 비참해 보인다.

“코인에 앞뒤가 있다”는 서양 격언은 사회에, 인간에게 부정적인 이면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라고 여겨진다. 나는 얼마만큼 엄청난 장난이, 혹은 권모술수가 득세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동심의 세계만은 어느 누구의 것이든 더러울 수 없으며, 아름다운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소설의 주인공이나 어느 가상의 인물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아이를 통해서 그것이 확인되는 경우, 엄마의 기쁨은 이만저만 이 아니다.

며칠 전, 꼬맹이 아들이  자기 친구들과 전화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저,  ○○인데요   XX 좀 바꿔 주세요...  너,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 그럼, 우리 가위, 바위, 보해서 지는 사람이 오도록 하자"는 아이들의 대화가 오갔다. 저 녀석들이. 언제 가위, 바위, 보를 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가고, 또 오거니 가거니 대문을 열어 달라느니... 귀찮게 굴까. 그들은 확인자도 없는 전화통 앞에서 서로 보이지도 않는 상대방을 보고 수화기를 들고서 손을 펴며 '보'를 내고 있었고, 저쪽에서는 아마 '바위'를 낸 모양 인지 ○○이는 "난 보야 넌 뭐니?" 묻고 있었다. 그런 대화가 끝나자 "야! 이겼다” 하고 환성을 올리고 있는 동안 곧 벨이 울리고  XX 가 놀러 왔다.

저렇게 엄연하고 정당한 질서 속에서 살 줄 아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속임수를 쓸 줄 모르고 눈으로 목격하지 않아도 서로 상대를 믿고 승부를 가리며, 깨끗이 승복할 줄도 아는 신사적인 방법으로 자기들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만큼 내가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기쁨을 크게 맛본 적은 없다. 이 꼬마 신사들이 그대로 어른 신사로 넘어가 주는 것이 우리들의 꿈이어야 하고, 그 꿈이 깨어지지 않도록 밀어주어야겠다.



위의 글은 내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 써 놓았던 것이다. 그 정직한 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이제 모두 청년이 되었다. 얼마나 변했는지 한번 보고 싶다. 이번 여름 방학에는 잠시 아들이 귀국하겠다고 해서 몹시 설레고 기다려진다. 짧은 기간이나마 조국에 대한 긍지를 심어 주고 싶어 이것저것 궁리를 하며 기다리는 중이다.

모든 남녀 간의 사랑이 뜨거웠다가 식어 가고, 깨어지기도 하는 데에 묘미가 있다고 하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만은 영원하다는 말이 정말일 것 같다. 나는 가위, 바위, 보를 하던 아들의 친구들을 이번 기회에 초대하여 그들이 얼마나 멋있고 정직한 청년이 되어 있는지 확 인하고 싶다.

비록 사는 일에 좀 서툴고 능력을 크게 발휘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사람에게 정직한 것은 영원한 매력이다. 특히 나 같은 교수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전문직에서는 아마추어 수준이면서 일상에 서는 프로 수준'으로 유능한 사람에게는 신뢰가 가지 않고, 또 정직하지 않은 사람 같아서 우울해진다.

정직은 인간의 기본이 되고 있지만, 그 길은 잠시만 소홀히 하고 스스로 경계하고 지키지 않으면 멀리 도망가 버리기에, 묘지 같은 평화를 유지하며 조용히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길이 아니다. 때로는 전투하는 자세로 임해야 하고 때로는 바보 천치로 보이기도 하며, 줄 것은 주고받을 것은 받아야 할 줄도 알아야 하니 멀고 어려운 길인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이 무엇보다도 정직성 위에 모든 제 구실을 하며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늘 바라고 있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들어왔던 이런 당연한 말을 새삼 청년이 된 아이들에게 다시 하고 있는 것은 세월 때문일까. 아니면 살면서 너무 절실하게 느껴서일까?


 

 꼬마신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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